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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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 신화 |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은 하루와 그 죽음

파트로클로스 신화 |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빌려 입은 하루와 그 죽음

그리스군 진영으로 한 남자가 울면서 뛰어들어와요. 트로이군이 배에 불을 붙이고 있고, 부상당한 장수들이 줄줄이 실려 나오는 걸 직접 보고 온 참이었습니다. 그가 달려간 곳은 정작 전장이 아니라, 싸움에서 완전히 발을 뺀 채 자기 막사에 틀어박혀 있던 아킬레우스의 천막이었어요.

아가멤논과 다툰 뒤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그를 설득하러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전우, 파트로클로스였어요. 이 하루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그 일이 왜 전쟁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았는지 순서대로 짚어봅니다.

눈물로 시작된 설득, 그리고 아킬레우스가 내건 조건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최고 전사들이 줄줄이 부상당했고 배들이 불타고 있다는 상황을 전하며, 자신과 미르미돈 병사들만이라도 내보내 달라고 청했어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요청합니다. 아킬레우스 본인의 갑옷을 빌려달라는 것이었죠.

계산은 단순했어요. 트로이군이 갑옷만 보고도 아킬레우스가 돌아왔다고 착각해 물러설 거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이 청을 받아들이지만, 조건 없이 내준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파트로클로스에게 배를 구하는 선에서 멈추라고 못박습니다. 트로이군을 밀어내되 성벽까지 쫓아가지는 말라는 것이었죠. 자신이 없는 사이 전공을 독차지하려 들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만약 성벽 근처까지 깊이 들어가면 올림포스의 신 하나가 직접 나서서 막아설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갑옷의 효과, 그리고 그 효과에 취한 진격

미르미돈을 이끌고 전장에 나선 파트로클로스는 예상대로의 효과를 봅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알아본 트로이군은 대열이 흔들릴 만큼 크게 술렁였고, 그리스군은 단숨에 전세를 뒤집어 트로이 성벽 가까이까지 밀어붙였어요.

이 흐름 속에서 파트로클로스는 리키아군을 이끌던 사르페돈과 맞닥뜨립니다. 둘의 대결은 길게 끌지 않았어요. 파트로클로스의 창이 심장 언저리를 꿰뚫으면서 사르페돈은 쓰러진 나무처럼 무너졌습니다.

그가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자신의 갑옷을 지키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곁에 있던 글라우코스에게 당부하는 것이었어요. 하늘에서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던 제우스가 헤라에게 그를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묻지만, 헤라는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며 만류합니다. 결국 제우스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자리에 핏빛 비를 내려 애도를 표하고 아폴론을 보내 시신을 씻기고 향유를 발라 고향 리키아로 돌려보내게 했어요.

사르페돈을 쓰러뜨린 기세를 몰아,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가 붙인 조건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성벽을 향해 세 차례나 몸을 던졌지만 그때마다 아폴론이 손으로 그의 방패를 밀어내며 막아섰어요. 그가 물러서지 않고 네 번째로 다시 달려들자, 아폴론은 그제야 목소리를 높여 이 도시를 무너뜨릴 운명은 그에게도, 훗날 아킬레우스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말에 파트로클로스는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 뒤로 물러났어요.

세 사람의 손을 거친 죽음

전투가 다시 격렬해진 어느 순간, 아폴론이 직접 개입합니다. 등 뒤로 다가와 손바닥으로 파트로클로스의 넓은 어깨를 내리치자 그의 눈앞이 흐려졌고, 투구가 벗겨져 말발굽 아래로 굴러떨어졌어요. 아폴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갑옷을 묶고 있던 고리까지 풀어버려, 그를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놓습니다.

바로 그 틈을 노려 다르다니아의 창병 에우포르보스가 등 뒤에서 창을 꽂아 넣었어요. 두 어깨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이 일격은 치명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완전히 쓰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에우포르보스는 곧바로 물러났어요.

이미 투구를 잃고 창에 찔려 비틀거리며 물러나던 그 모습을 헥토르가 놓치지 않았습니다. 무리를 헤치고 달려온 헥토르는 아랫배에 창을 깊숙이 찔러 넣었고, 파트로클로스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어요.

숨이 넘어가기 직전,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에게 이 죽음의 순서를 정확히 짚어줍니다. 제우스와 아폴론이 자신을 쓰러뜨렸고, 사람 중에서는 에우포르보스가 먼저 창을 꽂았으며, 헥토르 당신은 그저 세 번째로 손을 댔을 뿐이라고요.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남깁니다. 헥토르 역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며, 죽음이 이미 가까이 와 있고 그 손은 아킬레우스의 것이 될 거라고요. 헥토르는 창을 뽑아내며 시신을 향해 큰소리를 쳤지만, 그 예언은 훗날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주인 잃은 갑옷을 둘러싼 싸움

파트로클로스가 쓰러진 걸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메넬라오스였습니다. 그는 시신 곁을 지키고 섰고, 앞서 창을 꽂았던 에우포르보스가 다시 다가오자 그를 맞받아쳐 쓰러뜨렸어요. 하지만 뒤이어 헥토르가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오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지원을 구하러 물러납니다.

그사이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의 몸에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벗겨 자신이 직접 걸쳐 입습니다. 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이 갑옷을 입은 헥토르가 정작 그걸 벗어 아내 안드로마케에게 자랑할 날은 오지 않으리라고 씁쓸하게 되뇌었어요.

빈 몸이 된 시신은 이제 아이아스가 지킵니다. 그는 커다란 방패로 파트로클로스를 덮고 그 자리를 지켜냈고, 돌아온 메넬라오스와 함께 대열을 다잡아 버텨냈어요. 그 사이 아킬레우스의 전차를 몰던 자동메돈은 주인을 잃은 말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제우스가 이 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 덕분에 자동메돈은 겨우 전장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결국 메넬라오스와 메리오네스가 시신을 함께 들어 올려 배가 있는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두 아이아스가 뒤에서 추격해오는 트로이군을 막아섰습니다. 이 소식을 아킬레우스에게 전하는 일은 안틸로코스가 맡았어요.

무기 없이 지른 함성이 만든 균열

안틸로코스에게서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두 손 가득 흙을 퍼서 머리에 끼얹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주저앉았습니다. 곁에 있던 여인들이 함께 울부짖었고, 안틸로코스는 그가 스스로를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 그의 손을 붙잡고 있어야 했어요.

바닷속에서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 테티스가 곧장 달려옵니다. 그녀는 아들을 위로하며,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새 갑옷을 얻어올 테니 그때까지는 전투에 나서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반드시 맞서겠다는 마음을 접지 않으면서도,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는 기다리기로 합니다.

하지만 갑옷도 없이 그는 참호 앞으로 나가 소리를 지릅니다. 아테나가 그의 몸에 자신의 아이기스를 둘러주고 머리 위로 신성한 불꽃 같은 빛을 씌워주었어요. 세 번 거듭된 이 외침만으로 트로이군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했고, 그 혼란 속에서 전차끼리 뒤엉켜 죽은 병사가 열둘에 이르렀습니다. 그 틈을 타 그리스군은 마침내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무사히 진영 안으로 옮겨올 수 있었어요.

이날 밤 트로이 진영에서는 폴리다마스가 성 안으로 물러나 지키자고 조언합니다. 아킬레우스가 다시 전장에 나선 이상 예전 같은 기세로 맞설 수 없다는 판단이었어요. 하지만 헥토르는 이 조언을 물리치고 다음 날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고집했고, 트로이군은 그 뜻을 따릅니다. 그사이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새 방패와 갑옷 한 벌을 얻어 아들에게 가져다주었어요.

맹세와 꿈, 그리고 불길 위에서

새 갑옷을 갖춰 입은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나서기 전,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앞에서 맹세를 합니다. 헥토르를 반드시 이곳까지 끌고 와 개들에게 던져주겠다고, 그리고 트로이 왕자 열두 명을 그의 화장 불길에 함께 바치겠다고요.

헥토르를 쓰러뜨린 뒤 잠든 아킬레우스의 꿈에 파트로클로스의 혼백이 찾아옵니다. 어서 장례를 서둘러 자신이 저승의 문을 넘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두 사람의 유골을 한 항아리에 함께 담아달라고 청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부탁이었습니다.

화장 준비를 마친 아킬레우스는 자기 머리카락 한 줌을 잘라 파트로클로스의 손에 쥐여줍니다. 북풍과 서풍의 신을 불러들여 불길을 밤새 태웠고, 그 곁에서 사냥개 두 마리와 말 네 마리, 그리고 붙잡아온 트로이 청년 열두 명을 맹세대로 함께 바쳤어요.

장례가 끝난 뒤에는 추모 경기가 열립니다. 전차 경주, 권투, 레슬링, 달리기, 창던지기, 활쏘기가 차례로 이어졌고, 승자에게는 솥이나 말, 세발솥 같은 상품이 돌아갔어요. 전차 경주에서는 디오메데스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끌려다니던 시신과 늙은 아버지의 밤길

장례를 치른 뒤에도 아킬레우스의 분은 가라앉지 않았어요.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여러 날 끌고 돌았습니다. 다만 아폴론이 시신을 보호해 겉모습이 훼손되지는 않았어요.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신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아폴론은 아킬레우스를 두고 제 힘을 과신해 짐승 떼를 덮치는 사자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어요. 헤라와 포세이돈, 아테나만이 트로이에 대한 오랜 반감을 이유로 반대했을 뿐, 결국 제우스는 테티스를 시켜 아들에게 몸값을 받고 시신을 돌려주라고 전하게 합니다.

같은 명을 받은 이리스는 프리아모스 왕에게 보물을 챙겨 그리스 진영으로 향하라고 알렸어요. 늙은 왕은 한밤중에 시종 이다이오스만을 데리고 길을 나섰고, 헤르메스가 젊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 길을 안내해줍니다.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다다른 프리아모스는 그의 무릎을 끌어안고, 수많은 자기 아들을 죽인 그 손에 입을 맞춥니다. 그러고는 늙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킬레우스에게 호소했어요. 당신의 아버지도 지금 나처럼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냐고요.

그 말에 아킬레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몸값을 받아들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정성껏 손질해 돌려주었으며,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열이틀의 휴전까지 내주었어요. 프리아모스는 아들의 시신을 안고 트로이로 돌아가고, 아흐레 동안 애도한 뒤 열흘째 되는 날 화장을 치르며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지어집니다.

동료인가, 그 이상인가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를 두고는 예나 지금이나 여러 해석이 오갑니다. 원전은 이 둘을 전장을 함께 누빈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전우로 그리고 있어요. 파트로클로스가 죽어가면서 헥토르에게 남긴 예언이나, 꿈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을 되새기며 유골을 함께 묻어달라고 청하는 장면에서 그 유대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만 이 관계를 현대적인 연애 관계로 단정하는 해석도 오랫동안 있어왔어요. 원문이 둘의 관계를 어떤 언어로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다 보니, 이 부분은 후대 학자와 독자마다 다르게 읽어온 지점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이야기를 더 따라가고 싶다면

여기서 정리한 사건들은 일리아스 16권에서 24권까지, 서사시 후반부에 걸쳐 있어요. 트로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목마로 성이 무너지는 결말은 이 안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일리아스는 정확히 헥토르의 장례에서 끝나요.

사르페돈을 둘러싼 신들의 대화나,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 맞추는 장면 같은 대목은 줄거리 요약만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부분이에요. 원전 번역으로 이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고 싶다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함께 묶은 원전번역 세트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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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인물 하나하나보다 그리스 신화 전체의 흐름을 먼저 훑어보고 싶다면, 여러 신화를 한데 묶어 정리한 해설서 쪽이 더 편할 수 있어요. 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는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트로이 전쟁 전체 맥락 속에서 짚어주는 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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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인물들

파트로클로스를 마지막에 쓰러뜨린 헥토르가 이후 어떤 최후를 맞는지는 헥토르 신화 정리에서 이어서 볼 수 있어요. 갑옷을 빌려주고 끝내 친구를 잃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 전체에서 어떤 인물인지는 아킬레우스 신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담긴 일리아스가 실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다루는지는 일리아스 줄거리에서, 전쟁 전체의 시작과 흐름은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서 정리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