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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소 신화 | 오기기아에 갇힌 오디세우스, 신들의 명령으로 열리는 귀향길
오디세이아 5권은 올림포스에서 열린 신들의 회의로 문을 엽니다.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 앞에서, 한 남자가 먼 섬에 붙들린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그의 처지를 꺼내 놓아요.
아테나가 말한 남자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 오디세우스이고, 그가 붙들린 섬의 이름은 오기기아입니다. 이야기가 그 섬에 실제로 닿는 것은, 신들의 결정이 내려지고 전령이 바다를 건넌 뒤예요.
올림포스의 회의에서 먼저 내려진 결정
정지해 있던 오디세우스의 나날을 먼저 움직인 건 그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딱하게 여긴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사정을 알리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었어요.
제우스는 아테나의 호소를 받아들여 결정을 내립니다. 오디세우스를 배도 사람도 없이, 뗏목 하나로 스무 날 항해를 시켜 파이아케스인들의 땅에 닿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이 명령을 전할 사자로 뽑힌 것이 전령의 신 헤르메스였습니다.
칼립소는 그 오기기아에 홀로 사는 님프였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이 섬에 흘러들었는지는 뒤에 칼립소가 헤르메스에게 항변하며 직접 되짚어 들려주는데, 그가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과 칼립소가 그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사실만은 여기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향기로운 섬으로 날아든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황금 신발을 신고 바다 위를 가마우지처럼 미끄러지듯 건너 오기기아에 도착해요. 그가 발을 디딘 섬은 큰 불이 타오르고 삼나무와 백단향 냄새가 멀리까지 퍼지는 곳이었습니다.
동굴 주변에는 포도나무가 우거져 있고 올빼미와 까마귀 같은 새들이 깃들어 있었으며, 네 갈래로 흐르는 샘물이 보랏빛 꽃밭을 적시고 있었어요. 신조차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이 풍경이, 바로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감옥이었습니다.
칼립소의 항의,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정
헤르메스에게서 제우스의 명령을 전해 들은 칼립소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신이 인간 남자를 사랑하는 일에 유독 신들이 질투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어요.
칼립소는 근거로 옛 사례들을 꺼냅니다. 사냥꾼 오리온을 곁에 두었던 새벽의 여신이 결국 신들의 손에 그를 잃었던 일, 여신 데메테르가 인간 이아시온을 사랑했다가 제우스의 벼락을 맞게 만들었던 일을 들며, 이번에도 신들이 자신의 사랑을 못마땅해한다고 항변했죠.
그러면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가 애초에 이 섬에 오게 된 경위도 함께 되짚습니다. 제우스가 벼락으로 그의 배를 부수어 동료들이 모두 바다에 스러졌을 때, 그만이 홀로 배의 용골에 매달려 파도에 떠밀려 오기기아까지 흘러왔고, 자신이 그런 그를 거두어 돌보며 언젠가 늙지 않는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화를 냈지만, 칼립소에게는 제우스의 명령을 거스를 방법이 없었습니다. 항의는 감정을 토해내는 절차였을 뿐,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에요.
맹세를 요구하는 오디세우스, 조건 없이 열리는 길
칼립소는 결국 태도를 바꿔 오디세우스를 찾아갑니다. 그녀가 그를 발견한 곳은 동굴이 아니라 해변이었어요. 오디세우스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 파도가 밀려오는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낮에는 해변의 돌 위에서 눈물과 신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동굴 안쪽에서 칼립소와 함께 잠들었어요. 그가 원해서 남은 동거가 아니라는 점은,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표정에서 이미 드러나 있었습니다.
칼립소는 그런 그에게 굵은 나무를 베어 갑판이 있는 큰 뗏목을 만들라고 이르며, 그 위에 실을 빵과 포도주와 물까지 자신이 마련해주겠다고 말해요.
오랫동안 붙잡아두려 했던 사람이 갑자기 순순히 놓아주겠다고 하니, 오디세우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을 해치려는 또 다른 계략은 아닌지 의심하며, 진심으로 보내줄 생각이라면 하늘과 땅과 스틱스강의 물을 걸고 맹세하라고 요구해요.
칼립소는 그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신들조차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스틱스강의 이름을 걸었으니, 이제 더는 의심할 이유가 남지 않았어요. 오랜 억류 끝에 처음으로, 오디세우스 앞에 조건 없는 출발의 길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페넬로페와 견주어지는 칼립소, 그래도 집을 택한 오디세우스
맹세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동굴로 돌아갑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 앞에 인간이 먹는 음식과 술을 차려주고, 자신은 신들이 먹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들며 마주 앉았어요.
식사 자리에서 칼립소는 그에게 묻습니다. 정말 이대로 고향과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그 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이 남아 있는지 안다면 차라리 이 섬에 남아 자신과 함께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쪽을 택하지 않겠느냐고요. 자신이 페넬로페보다 모습이나 자태에서 결코 못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말에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페넬로페가 아름다움과 위엄에서 당신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 그녀는 인간이고 당신은 늙지 않는 신이라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답해요. 그럼에도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동굴 안쪽에서 함께 밤을 보냅니다. 영원한 삶을 제안받고도 필멸의 아내와 고향을 선택한 오디세우스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남은 것은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작될 출발 준비뿐이었어요.
도끼와 자귀로 나흘, 뗏목이 만들어지기까지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칼립소가 내준 청동 도끼와 날카로운 자귀를 손에 쥐고, 오리나무와 포플러와 소나무를 스무 그루나 베어 넘겼어요.
그는 베어낸 목재를 반듯하게 다듬고 구멍을 뚫어 서로 맞물리게 이어 붙이며 뗏목의 뼈대를 세웁니다. 갑판을 깔고 돛대를 올리고,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파도를 막을 울타리까지 둘러요. 혼자 도끼질부터 마무리까지 해낸 이 작업은 꼬박 나흘이 걸린 뒤에야 끝이 났습니다.
포도주 자루와 새 옷, 그리고 순풍이 실어 보낸 작별
뗏목이 완성되자 칼립소는 마지막으로 그를 배웅할 물건들을 챙깁니다. 검은 포도주를 담은 가죽 자루, 그보다 더 큰 물 자루, 고기를 넣은 주머니, 그리고 갈아입을 깨끗한 옷까지 손수 마련해 실어주었어요.
그러고는 순하고 따뜻한 바람을 일으켜 뗏목이 순조롭게 나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오랫동안 그를 곁에 두려 했던 님프가, 마지막에는 직접 순풍까지 만들어 보내는 쪽을 택한 셈이에요.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오기기아를 뒤로하고 홀로 바다로 나섭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오던 포세이돈, 뗏목을 발견하다
순조롭던 항해에 그림자를 드리운 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습니다. 마침 먼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오던 그는 저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오디세우스의 뗏목을 발견해요.
신들이 자신이 없는 사이에 결정을 뒤집었다는 사실에 포세이돈은 분노합니다. 그는 구름을 끌어모으고 삼지창으로 바다를 휘저어, 사방의 바람을 한꺼번에 뗏목 위로 몰아쳐요. 순식간에 몰려든 폭풍 속에서 돛대가 중간에서 부러지고, 돛은 그대로 바다로 떨어져버립니다.
이노가 건넨 베일, 뗏목을 버리고 헤엄치기로 한 선택
부서진 뗏목 위에서 오디세우스가 절박해질 무렵, 바다의 여신 이노가 갈매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녀는 자신의 베일을 몸에 두르고 뗏목을 버린 채 헤엄쳐 가라고 알려줘요.
오디세우스는 처음엔 이 말도 선뜻 믿지 못합니다. 뗏목이라는 눈에 보이는 발판을 두고 낯선 신의 베일 하나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파도가 뗏목의 남은 부분마저 부숴버리자, 그는 결국 베일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이틀 밤낮의 표류, 마침내 보이는 뭍
그때부터 오디세우스는 이틀 밤낮을 꼬박 바다 위에서 떠다녀야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바람이 잦아들면서, 저 멀리 육지가 시야에 들어와요.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눈앞의 해안은 온통 바위투성이에 파도가 거칠고 배를 댈 항구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 그 바위에 부딪혀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그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어귀를 발견하고 그 강의 신에게 매달려 간신히 안전한 곳으로 들어섭니다.
뭍에 오른 오디세우스는 올리브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마른 잎사귀를 잔뜩 그러모아 몸을 덮은 채 그대로 잠이 듭니다. 오기기아를 떠난 뒤 겪은 폭풍과 표류 끝에 처음으로 맞는 온전한 휴식이었어요. 이 잠에서 깨어난 뒤 그를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파이아케스의 공주이며, 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이어집니다.
칼립소와 페넬로페, 원전이 비교했어도 오디세우스가 갈라놓은 두 사람
앞서 동굴 장면에서 보았듯, 칼립소가 스스로를 페넬로페와 견주며 자태에서 못하지 않다고 말하고 불사·불로를 제안한 것은 오디세이아 5권에 실제로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비교와 제안을 지어내거나 없었던 일처럼 지우면 안 돼요. 다만 그 비교를 들은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의 아름다움과 위엄이 칼립소에게 못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고향과 아내를 택했다는 것 역시 같은 장면에 나오는 사실입니다.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귀향길에서 붙들었던 존재로 남는 것은 두 사람이 비교조차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비교 끝에 오디세우스 자신이 페넬로페를 택했기 때문이에요.
칼립소와 자주 헷갈리는 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키르케입니다. 둘 다 섬에 사는 신적 존재이지만 등장하는 권도, 오디세우스와 얽히는 사건도 서로 달라요. 키르케가 부하들을 돼지로 바꾸고 오디세우스와 한 해를 머무는 10권 이야기는 키르케 신화 정리에서 따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 앞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오기기아에서 벗어난 뒤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의 궁전에서 무엇을 밝히고,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에서 무엇을 마주하는지는 오디세이아 줄거리 결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할 수 있어요. 반대로 그가 오기기아에 닿기 전에 어떤 모험들을 이미 거쳐 왔는지는 오디세우스 여정 지도에서 순서대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리한 흐름은 신들의 회의에서 시작해 뗏목이 부서지는 폭풍까지, 사건 순서를 따라간 것일 뿐이에요. 칼립소가 항의하며 꺼내는 오리온과 이아시온 이야기, 오디세우스가 맹세를 요구하는 대목 같은 실제 대사와 묘사는 원문으로 직접 읽을 때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오뒷세이아 원문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면 민음사에서 나온 김기영 번역 오뒷세이아(ISBN 9788937470219, 2022년판)로 확인해볼 수 있어요. 관련 도서 추천오뒷세이아원작 완역본 책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