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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 하데스 | 저승의 신 페르세포네 데메테르 가족 관계 정리
들판 가득 수선화가 피어 있어요. 페르세포네는 다른 소녀들과 함께 꽃을 꺾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송이 앞에 멈춰 섭니다. 그 꽃으로 손을 뻗는 순간, 발밑의 땅이 갈라지고 그 틈에서 검은 말이 끄는 황금 마차가 솟아올라요.
마차를 몰고 나온 이는 하데스, 죽은 자들의 영역을 다스리는 신이었습니다. 이 짧은 장면 하나에서 시작해, 한 가족 전체가 뒤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를 찾기까지의 이야기를 호메로스의 데메테르 찬가는 순서대로 전해줍니다.
수선화 앞에서 사라진 페르세포네
찬가에 따르면 그 수선화는 우연히 피어난 꽃이 아니었어요. 대지가 제우스의 뜻에 따라 특별히 피워낸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페르세포네가 그 꽃에 손을 대는 순간을 노려, 땅이 열리고 하데스가 나타난 거예요.
하데스는 그녀를 마차에 태워 곧바로 저승으로 데려갑니다. 페르세포네는 끌려가면서 아버지 제우스를 애타게 불렀지만, 그 목소리를 들은 건 헤카테와 태양신 헬리오스뿐이었어요. 정작 제우스는 자신의 신전에 앉아 있었을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딸이 사라진 자리에는 흩어진 꽃송이만 남았습니다. 이 침묵이 이어지는 이야기 전체의 출발점이 돼요.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모르는 척했으며, 정작 어머니인 데메테르만 아무것도 모른 채 딸을 찾아 나서야 했던 거죠.
아흐레 동안 횃불을 든 어머니
데메테르는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만은 곧바로 알아챕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어깨의 겉옷을 벗어 던진 채, 양손에 횃불을 들고 아흐레 밤낮을 땅과 바다 위로 헤매고 다녀요. 그 사이 신들이 먹는 암브로시아도, 넥타르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열흘째 되던 날 새벽, 헤카테가 횃불을 들고 그녀 앞에 나타나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눠줍니다. 하지만 헤카테도 누가 저지른 일인지까지는 알지 못했어요. 둘은 함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태양신 헬리오스를 찾아갑니다.
헬리오스는 데메테르에게 사실을 그대로 전합니다. 제우스가 허락해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데려갔다는 것이었죠. 심지어 헬리오스는 하데스가 신들 가운데 부족할 것 없는 남편이니 이 결혼을 받아들이라고 권하기까지 합니다.
데메테르에게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충격이었어요. 딸을 데려간 것이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남편의 형제이자 자신도 잘 아는 신이었고, 그 일이 제우스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이 순간부터 올림포스 전체를 향해 등을 돌립니다.
엘레우시스에 숨어든 여신, 불 속의 아이
분노한 데메테르는 신들의 자리인 올림포스를 떠나 스스로 늙은 여인의 모습으로 변장합니다. 그러고는 엘레우시스라는 곳에 이르러 우물가에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서 왕 켈레오스의 딸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말을 건넵니다.
데메테르는 자신을 도소라 부르며, 크레타에서 해적을 피해 도망쳐 온 여인이라고 둘러댑니다. 딸들은 그녀를 어머니 메타네이라에게 데려갔고, 메타네이라는 늦둥이로 얻은 아들 데모폰의 유모 자리를 그녀에게 맡깁니다.
데메테르는 낮에는 아이에게 암브로시아를 발라주고 신성한 숨결을 불어넣어 돌보았어요. 그런데 밤이 되면 아이를 몰래 불 속에 눕혀두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해서 데모폰을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려 했던 거예요.
어느 밤, 이 광경을 본 메타네이라가 놀라 비명을 지릅니다. "데모폰, 내 아들아, 저 낯선 여인이 너를 불 속 깊이 묻고 있구나." 그 외침에 데메테르는 화를 내며 아이를 불에서 낚아채 꺼냅니다.
결국 데메테르는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방해받지만 않았다면 데모폰을 영원히 늙지 않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제는 그 아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전해요. 다만 후한 명예만은 영원히 그에게 남을 것이라 약속하고, 엘레우시스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한 신전을 지으라고 명합니다.
곡식이 자라지 않는 땅
신전에 자리 잡은 데메테르는 딸을 그리워하며 그 안에 틀어박힙니다. 그러는 사이 온 땅에서 씨앗이 싹트기를 멈춰요. 밭을 갈아도 소용없었고, 사람들은 굶주리기 시작합니다.
데메테르는 딸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올림포스로도 돌아가지 않고, 땅에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게 하겠다고 마음을 굳힙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신들에게 바칠 제물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제우스가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제우스는 먼저 이리스를 보내 데메테르를 불러오게 하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습니다. 이어 다른 신들이 저마다 선물을 들고 찾아가 설득해봐도 소용없었죠. 결국 제우스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 딸을 실제로 돌려보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헤르메스가 전한 명령, 하데스가 건넨 석류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저승으로 보내 하데스에게 명령을 전하게 합니다. 헤르메스가 도착했을 때, 페르세포네는 하데스 곁에 앉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제우스의 뜻을 들은 하데스는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그는 페르세포네에게 이렇게 말해요. "그대의 어두운 옷을 입은 어머니에게 가시오. 나는 신들 사이에서 그대에게 부족함 없는 남편일 것이오." 겉으로는 순순히 보내주는 모양새였죠.
하지만 하데스는 그녀를 완전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떠나기 직전, 그는 몰래 달콤한 석류 씨를 그녀 입에 넣어줍니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의 음식을 입에 대게 만들어, 그녀가 오직 지상에만 머물 수 없도록 손을 써둔 거예요.
다시 만난 모녀, 씨앗 하나가 바꾼 것
헤르메스는 신들의 마차에 페르세포네를 태우고 데메테르의 신전으로 향합니다. 딸을 본 데메테르는 마치 숲을 내달리는 여인처럼 뛰쳐나갔고, 페르세포네도 마차에서 뛰어내려 어머니 품에 안깁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데메테르의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어요. 그녀는 딸을 끌어안은 채 곧바로 묻습니다. "얘야, 저 아래 있는 동안 혹시 무엇이든 입에 댄 건 아니겠지?" 이 질문 하나에 재회의 기쁨이 다시 무거워집니다.
페르세포네는 사실대로 말합니다. 헤르메스가 도착해 자신을 데려가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지만, 하데스가 그 틈에 몰래 석류 씨를 입에 넣어 억지로 삼키게 했다고 전해요. 그러고 나서야 자신이 붙잡혀 가던 순간을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자세히 들려줍니다. 크로커스와 붓꽃, 히아신스와 장미, 백합이 뒤섞인 들판에서 친구들과 꽃을 꺾다가 땅이 갈라졌다고 말이에요.
이 한 알의 씨앗이 남긴 결과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가 나서서 중재안을 전했고, 데메테르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요. 페르세포네는 한 해의 일부는 저승에서 하데스와 함께, 나머지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데메테르는 이 약속을 받아들이자마자 멈춰 있던 땅에 다시 싹을 틔워요.
데메테르는 이후 엘레우시스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의를 전합니다. 트립톨레모스와 디오클레스, 에우몰포스와 켈레오스가 그 가르침을 받았고,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될 신성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찬가는 전해요.
로마의 플루토, 그리고 오디세이아의 저승은 또 다른 이야기
이 이야기 속 하데스는 로마 신화에서 플루토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다만 이 이름의 대응 관계가 로마 쪽에서 따로 자라난 전승 전체를 데메테르 찬가의 사건에 그대로 포개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름은 이어지지만, 이야기의 세부는 전승마다 갈라질 수 있습니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을 찾아가는 장면은 《오디세이아》 11권에 따로 등장해요. 같은 저승의 신을 다루지만, 이는 데메테르 찬가와는 별개 작품에 속한 사건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인물들
저승에서 돌아온 뒤 한 해의 절반 가까이를 다시 그곳에서 보내야 하는 페르세포네의 사정은 페르세포네 신화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딸을 찾아 아흐레 밤낮을 헤맨 데메테르가 이후 어떤 자리를 지키게 되는지는 데메테르 신화에서 이어서 볼 수 있어요.
같은 저승의 문턱을 살아 있는 몸으로 넘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오디세우스 이야기에서, 하데스와 제우스, 데메테르가 형제자매로 얽힌 신들의 계보 전체는 그리스 신화 계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